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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얼빈...슬퍼서 아름다운 기록문(2)
    그냥 자유롭게 2023. 1. 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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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정당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가 기획한 순종황제의 한반도 순행...

    지난 1편에서 이어집니다.

    이토는 순종과 함께 조선 반도를 다니며 민중들의 소요를 다스리려 합니다.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기위한 정치 행위였습니다 

    이 비슷한 장면들이 우리 주변에서 아주 조금씩 우리 나라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토와 순종의 순행 전 기념사진입니다.


     

    조선 황제와 이토 통감의 남방 순행은 일본 제국의 문명화된 우호 정책을

    조선 민중과 세계만방에 이해시키는 전기가 되었고 일본 천황이 보낸 함대의 위용으로

    조선 황제를 영접함으로써

    강과 약 사이의 친선을 과시한 것으로 통감관방의 보고서는 평가했다.

    조선의 양민들은 점차 통감 통치 안으로 순입順入되고 있으나 폭민들의 발호가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니

    이 같은 시국 속에서 양민에게는 유화宥和로, 폭민에게는 무단武斷으로 대처하는 두 방향이 선명히 떠오르고 있다고 보고서는 결론지었다. - < 하얼빈, 김훈 > 중에서

     


    이토는 순종과 한반도의 남부를 순행하면서 모든 행동, 사진 한장까지도 미리 기획을 합니다.

    마디의 말도 걸음 하나도 일본 제국의 식민지 통치를 위해 만들어지고 판이 짜여집니다.

    1909년 이토는 순종과 함께 대구-마산-부산 순행을 기획합니다.


    이토의 책상 위에는 남행 때 일본인 사진사를 시켜서 찍은 사진들이 놓여 있었다.

    이토는 사진사에게 사진의 구도와 초점을 미리 지시했다.

    이토의 지휘로 일본 기함에서의 영접 의전은 선실이 아닌 갑판에서 열렸다.

    테이블 중앙에 이토와 순종이 나란히 앉고, 그 양쪽으로 해군 장교들과 관료들이 마주앉았다.

     

      사진에 기함의 크기와 포신의 힘이 드러나고, 포신을 배경으로 순종의 표정이 편안하게 나타나고,

    뱃전 너머로 수평선이 지나가게 구도를 잡으라고, 이토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사진사에게 지시했다.

    이토는 사진사에게 근접 촬영을 허용했다.

     

      사진은 대체로 지시 사항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토는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순종의 표정은 미소도 아니고 찡그림도 아니고, 그 양쪽을 다 섞은 것도 같았다.

    이토는 비서관을 불러서 같은 앵글로 찍은 다른 사진을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다른 사진에서도 순종의 표정은 마찬가지로 모호했다. 다시 찍을 수는 없었다.

    미흡하기는 하지만 이 사진을 공포하면 정책 효과가 클 것이었다.

    이 사진이 조선 민심의 상처를 자극하겠지만 위력으로 압도하는 힘이 있을 것이고,

    그보다도 폭민과 양민 사이에 장벽을 쌓아서 폭민들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낼 것이라고 이토는 판단했다.

    남행의 성과는 작지 않았는데, 그 크기는 서서히 나타날 것이었다.

     

      ……계속 순행을 이어가자. 이번엔 서북이다. - < 하얼빈, 김훈 > 중에서

     


    그리고 이토는 바로 순종황제와 함께 서북 순행을 떠납니다.

    고려 왕조의 만월대 폐허 앞에서 순종을 비웃습니다.

    순행 당시 순종을 보기 위해 모인 인파들입니다.


    만월대는 오백여 년 전 홍건적이 부수고 간 폐허로 남아 있었다.

    지방 관장이 가끔씩 잡초를 걷어내서 풀밭 위에 주춧돌들이 드러나 보였다.

     

      송악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멀리서 만월대를 외호하고 있었는데,

    주춧돌들은 풀밭을 건너서 산 밑까지 이어져 있었다.

    정전正殿인 회경전會慶殿의 자리는 그 산 밑이었으므로 수많은 문루를 지나서야 닿을 수 있었음을

    주춧돌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주춧돌마다 목재 기둥을 받치던 홈이 파였고,

    무너진 전각들의 환영을 하나씩 이고 있었다.

     

      순종은 주춧돌의 대열 사이를 걸었다.

    일산이 바람에 펄럭여서 내관들이 쩔쩔맸다. 이토가 말했다.

     

      —고려조의 폐허를 보니 오백 년 전 홍건적의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때 고려 왕이 파천하고 왕궁이 불탔지만, 고려는 곧 개성을 회복하고

    적들을 압록강 밖으로 내몰았던 것이오.

      —폐하께서 고사에 해박하십니다.

    사백 년을 경영해온 고려 대궐이 무너진 지 또 오백 년이 지나서 이처럼 풀밭이 되었습니다.

      —주춧돌을 보니 심란하오.

     

      이토가 고개를 돌려서 순종을 힐긋 쳐다보았다.

     

      —심란하실 테지요. 그러나 돌들은 이제 고요합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폐허가 오히려 편안해 보이는군요.

     

      라고 말하고 나서 이토는 소리 내서 웃었다.

    순종은 고개를 숙여서 주춧돌을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 < 하얼빈, 김훈 > 중에서

     


    개성 만월대에서의 이토와 순종의 사진입니다.


    큰 구도가 필요하다. 폐허를 크게, 조선 황제를 작게 나타내라고

    이토는 만월대 돌계단 앞에서 일본인 사진사에게 명령했다.

    이토는 손짓으로 송악산 능선과 계단을 가리키며 지시했다.

    무너진 돌계단과 그 너머의 송악산 능선을 구도의 횡축에 들어앉히고

    조선 황제의 대열이 그 폐허에 종축으로 길게 늘어선 사진을 이토는 요구했다.

    미리 현장을 답사한 사진사는 이토의 요구를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 < 하얼빈, 김훈 > 중에서


    순종과 이토가 순행 열차에 오릅니다..

     

    이토는 일본 해군 기함에서 찍은 사진과 만월대에서 찍은 사진에 만족했다.

    이 사진 두 장이 조선의 운명과 조선의 앞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토는 판단했다.

    사진은 무리 없고 과장 없이 찍혀 있어서 보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것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까지도 사진에 찍힐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토는 혼자서 놀랐다.

     

      이 사진 두 장을 한 쌍으로 묶어서 일본, 조선, 그 밖에 여러 나라의 언론기관에 배포하라고

    이토는 비서관에게 지시했다. - < 하얼빈, 김훈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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