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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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슬퍼서 아름다운 우리들의 이야기 마지막...그냥 자유롭게 2023. 1. 22. 09:36
마지막편에서는 안중근의사의 재판 과정과 주변 사람들의 이후 이야기를 다루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김훈 선생님, 감사합니다. 길게 여운이 남는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이토는 사후에 일본에 묻히고 일본 제국주의의 영웅으로 남습니다. 이토는 사후에 도쿄시 시나가와구 니시오이의 묘지에 묻혔다. 1932년에는 이토의 명복을 빌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사찰 박문사博文寺가 서울 장충단공원 동쪽 언덕에 세워졌다. 장충단은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 때 순직한 무관들을 제사하는 자리였다. 박문사 건립 운동은 조선총독부의 제창으로 시작되었고 조선과 일본에서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조선의 모금 목표는 이십만 엔이었고 이 액수는 각 도에 할당되었다. 조선 왕궁인 경희궁의 흥화문을 옮겨서 박문사의 정문으로 삼았다. 1973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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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슬퍼서 아름다운 우리들의 이야기...(3)그냥 자유롭게 2023. 1. 15. 07:30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드디어 저격합니다. 안중근은 러시아 병대 뒤쪽에서 이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주악 소리가 커졌다. 소리가 커지면 총소리가 묻힐 터이므로 유리한 조건이고 러시아 의장대들의 부동자세도 불리한 조건이 아니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권총은 상의 안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이토는 더욱 다가왔다. 러시아 군인들 사이로 두 걸음 정도의 틈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이토가 보였다. 키 큰 러시아인들 틈에 키가 작고 턱수염이 허연 노인이 서 있었다. 저것이 이토로구나…… 저 작고 괴죄죄한 늙은이가…… 저 오종종한 것이…… 안중근은 러시아 군인들 틈새로 조준선을 열었다. 이토의 주변에서 키 큰 러시아인들이 서성거려서 표적은 가려졌다. 러시아인과 일본인들 틈에 섞여서 이토는 이동하고 있었다. 이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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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슬퍼서 아름다운 기록문(2)그냥 자유롭게 2023. 1. 1. 07:20
지난 1편에서 이어집니다. 이토는 순종과 함께 조선 반도를 다니며 민중들의 소요를 다스리려 합니다.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기위한 정치 행위였습니다 이 비슷한 장면들이 우리 주변에서 아주 조금씩 우리 나라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조선 황제와 이토 통감의 남방 순행은 일본 제국의 문명화된 우호 정책을 조선 민중과 세계만방에 이해시키는 전기가 되었고 일본 천황이 보낸 함대의 위용으로 조선 황제를 영접함으로써 강과 약 사이의 친선을 과시한 것으로 통감관방의 보고서는 평가했다. 조선의 양민들은 점차 통감 통치 안으로 순입順入되고 있으나 폭민들의 발호가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니 이 같은 시국 속에서 양민에게는 유화宥和로, 폭민에게는 무단武斷으로 대처하는 두 방향이 선명히 떠오르고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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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님의 '하얼빈' ...슬퍼서 아름다운 기록문...그냥 자유롭게 2022. 12. 25. 07:14
김훈 작가님은 올해 안중근 의사님에 대한 이야기, '하얼빈'을 써 주셨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았고 왜 그런 결단을 내리고 행동에 옮겼을까 하는 의문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습니다. 위인전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남은 그에 대한 책들은 있었지만...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수퍼 히어로 같은, 구국의 결단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김훈 작가님은 우리 주변의 안중근이라는 보통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에게 죽임을 당했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이미 망하고 껍데기만 남은 제국의 황제에 대한 이야기도 남겨주었고 망해버린 제국을 일본에게 계약으로 팔아 넘긴 그 당시 대한제국의 최고 엘리트들의 이야기도 소소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슬퍼서 아름다운 기록문입니다. ..